나폴리탄)한빛시 보행 관련 안전 공고문

"○○아. 새로 이사한 곳은 어때 살만해?"

한빛시에 이사 온지 9일 째, 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대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기도 좋고 살만해. 단지 신경써야 할 점들이 너무 많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는 "신경써야 할 거?" 이라고 되물었고, 나는 자연스레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

"말도 마.. 무슨 놈의 규칙을 그렇게 지켜야 하는지, 또 그 규칙들 안 지키면 어떡해 되는지 알아..... 여보세요? 내 말 들려?"

친구에게 푸념을 주구 창창 늘어뜨리자마자 전화는 갑자기 끊겨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전화를 끊은 친구에게 실망하였다.

"나중에 보면 한마디 해줘야겠네."

나는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발 걸음이 빨라진 나를 붙잡은 건 길 구석에 꽃혀있는 안내판이었다.

"여기에 언제부터 안내판이 꽃혀있었지?"

평소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하도 종이에 적힌 규칙때문에 이리저리 시달린 터라 나는 표정을 일그러진 채 안내판에 적힌 규칙을 읽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한빛시장 입니다. 아시는분들도 계시겠지만, 저희 한빛시 는 5년 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 된 후 꾸존한 공사로 인해 지금의 한빛 시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공사 당시부터 꾸존히 나오는 원인 모를 인명피해 때문에 한빛 시로 전입하시는 분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어, 이에 저희 한빛 시는 시민분들의 안전을 위해 공고문을 올립니다. 부디 잘 읽어주시기 바라며, 공고문에 적힌 내용을 무시하거나 어겨서 생기는 문제점들은 저희 한빛 시에서 책임 져 주지 못합니다.


1. 저희 한빛 시는 오후 9시 30분 이후의 보행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분들의 안전을 위한거니 협조 부탁 드립니다. 또한 노숙을 하시거나 모델이나 호텔을 잡아 하루 묶는 건 그리 좋은 행동이 아니며, 차라리 차 안에서 하룻밤 묶는 걸 추천 드립니다.


2. 한빛 시는 그 어떤 때라도 건물 공사를 할 시 사전에 안내문을 올립니다. 만일 보행 시 못 보던 건물이 보일 경우, 그 어떤 상황이든 해당 건물에 동요하지 마십시요. 그 건물에 동요하신 시민분들은 현재까지도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3. 만일 보행 시 주위의 가로등이 불규칙 하게 깜박거린다면 당장 그 공간을 벗어나 깜박거리지 않는 가로등 밑으로 최대한 빨리 피신 하십시요. 이때 절대 뒤를 돌아보시면 안되며 있는 힘을 다해 뛰셔야 할겁니다. 깜박거리지 않는 가로등 밑으로 피신하셨다면, 뒤를 돌아보셔도 됩니다. 지금 그 순간 만큼은 안전하실 겁니다.


3-1. 깜박거리는 가로등의 불빛이 빨간색이라면, 가급적 빨리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최대한 밝은 분위기를 조정 하십시요. 단, 주거지인 경우엔 이 항목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4. 만일 오후 9시 30분 이후에 길거리에 남아있을 경우, 가급적 건물 안을 주시하지 마시고 최대한 빨리 자택으로 향하시길 바랍니다. 


5. 한빛 시에서 제공하는 모든 규칙은 시민분들의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절대로 외부에 발설 하지 마십시요. 만일 이 항목을 무시하고 외부에 발설 하신다면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6. 길을 걷던 중 빨간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한빛 마트가 어딘지 알라주라 면서 길 안내를 부탁하면, 대꾸도 하지 마시고 즉시 그 공간을 벗어 나십시요. 단, 뛰지 마시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요. 그 아이는 오후 9시 30분마다 나타나 새로운 식품을 찾고 있습니다.


7. 간혹 걷고 있던 거리에서 이질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만, 당황하지 마시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시면 원래의 거리로 돌아와 있을겁니다.


8. 횡단보도를 이용해 건너편으로 이동할 때, 하얀색 블록 수를 세면서 가지 마십시요. 또한 하얀색 블록만 밟고 가지마십시요. 이를 어길 시 당신이 도착한 장소는 저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으로 한빛 시 보행 관련 안전 공고문을 마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공고문을 어기거나 무시해서 생기는 모든 문제점은 저희 한빛 시에서 책임 져 주지 못하는 걸 알립니다. 또한 공고문의 진위 여부를 위해 5번 항목은 공백 처리 하였습니다. 만일 5번 항목에 그 어떠한 내용이 적혀있어도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5번 항목이 공백이라고...? 그럼 내가 읽은 건 대체..."

나는 공고문의 마지막 문장이 거슬렸지만,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눈 앞엔 승용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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